해녀 사진을 시대순으로 놓으면 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흰 무명 홑겹에서 검은 고무옷으로. 옷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물질의 시간과 수입, 그리고 몸의 병까지 함께 바뀌었습니다.
해녀복은 무명으로 만든 물소중이와 물적삼에서 20세기 후반 고무 잠수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물소중이 시절에는 추위 때문에 한 번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밖에 물질할 수 없어 불턱에서 몸을 녹이는 시간이 길었고, 고무옷 이후에는 겨울에도 서너 시간 넘게 물질하게 되어 수입이 늘었습니다. 대신 잠수 시간이 길어지면서 잠수병과 두통이 늘었고, 부력을 이기기 위해 납추를 달게 됐습니다.
물소중이는 무명으로 만든 해녀의 옛 작업복입니다. 한쪽 어깨에 끈을 걸고 옆을 단추나 끈으로 여미는 홑겹 옷으로,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있고 갈아입기 쉽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위에 물적삼이라는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까부리라는 수건을 썼습니다. 흰색이나 검은 물을 들인 무명이었고, 대부분 해녀가 직접 지었습니다.
이 옷의 문제는 추위였습니다. 무명 한 겹은 물속에서 체온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번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물질하고 나와 불턱에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인 뒤 다시 들어갔습니다. 하루 물질 시간이 짧았고, 겨울 물질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 항목 | 물소중이 시절 | 고무옷 이후 |
|---|---|---|
| 옷 | 무명 물소중이, 물적삼, 까부리 | 검은 고무 잠수복, 모자 일체형 |
| 한 번 물질 시간 | 30분~1시간, 추위로 제한 | 서너 시간 이상, 겨울에도 가능 |
| 휴식 | 불턱에서 불을 쬐며 자주 쉼 | 탈의장에서 쉬며 불턱 사용 감소 |
| 부력 | 추가 장비 불필요 | 납추를 허리에 달아야 함 |
| 수입 | 물질 일수와 시간의 한계로 적음 | 채취량 증가로 늘어남 |
| 건강 | 추위와 저체온 | 잠수병, 두통, 관절 통증 증가 |
고무 잠수복은 20세기 후반, 대체로 1970년대 초에 제주에 들어와 빠르게 퍼졌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처음에는 값이 비싸 모두가 입지는 못했지만, 물질 시간과 수입의 차이가 워낙 커서 몇 해 안에 대부분의 해녀가 고무옷으로 바꿨습니다.
고무옷은 물질을 두 가지로 바꿨습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추위가 해결되니 한 번에 몇 시간씩 바다에 머물 수 있게 됐습니다. 둘째는 계절입니다. 겨울에도 물질이 가능해져 일 년 내내 바다에 들 수 있게 됐습니다. 수입이 늘었고, 해녀가 가족을 부양하는 힘도 커졌습니다.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자 오래 머물게 됐습니다. 하루 대여섯 시간씩 잠수와 부상을 수백 번 반복하면서 잠수병과 만성 두통, 관절 통증이 늘었습니다. 해녀들이 두통약을 달고 산다는 말이 이때부터 나왔습니다. 물소중이 시절의 추위가 강제로 쉬게 했다면, 고무옷은 쉬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습니다.
옷의 변화는 해녀의 하루도 바꿨습니다. 물소중이 시절에는 물때에 맞춰 짧게 물질하고 밭일로 돌아갔다면, 고무옷 이후에는 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물질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물질과 밭일을 함께 하던 해녀의 생활 방식 자체가 옷과 함께 달라진 것입니다.
제주도는 해녀에게 고무옷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원 내용은 해마다 바뀌므로 도청과 시청 공고 기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고무옷은 해녀에게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힘을 줬고, 그만큼 몸을 상하게도 했습니다. 해녀들은 그래서 옷이 아니라 규칙으로 시간을 정합니다. Sumbi도 화면을 잠그는 힘이 아니라 정한 시간을 지키는 규칙 위에 서 있습니다. 이름부터 규칙까지, 이 문화에서 빌려왔습니다.
내 숨만큼 잠수해 보기 →물소중이는 지금 물질에 쓰이지 않지만, 해녀 축제와 행사에서 옛 복장으로 재현되고 해녀박물관에 실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옷의 구조 자체가 해녀의 몸과 일에 맞춰 발달한 것이라 민속 의복 연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머리에 쓰던 까부리는 고무옷의 모자로 대체됐습니다. 물소중이 시절 해녀들은 물수건으로 머리와 귀를 감싸 추위와 물의 압력을 막았는데, 그 감각이 지금 고무 모자에 남아 있습니다.
불턱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이는 곳이었습니다. 고무옷과 함께 현대식 탈의장이 생기면서 불턱은 대부분 쓰이지 않게 됐고, 지금은 숨비소리길 같은 곳에 유적처럼 남아 있습니다.
바다에서 배운 한 줄.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됐을 때 해녀들이 배운 것은 더 오래 머무는 법이 아니라 언제 나올지 다시 정하는 법이었습니다. 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히 볼 수 있으니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이 글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문화 소개이며, 수치는 참고 자료의 조사 시점 기준입니다.